색채가 없는 다자키쓰쿠르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하루키의 소설보다는 그의 에세이를 좋아했다. 담담하지만 꽤 유머러스하게, 한편으로는 또 진지하게, 특히 쉬운 일상의 언어로 순간의 느낌이나 사물에 대한 감정을 표현하는 그의 에세이 문체가 마음에 들었다.
하루키의 소설은 상실의 시대, 해변의 카프카, 1Q84, 그리고 이 소설까지 읽은 기억은 있으나 내용은 통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하루키 소설을 다시 읽어보자 싶어 선택한 첫번째 책.
어느 에세이에서 이 소설에 대해 하루키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이 소설은 주인공과 대략적인 인물만 설정해놓고 이야기를 시작했다고. 결말도 정해놓지 않은 채 소설을 써내려가며 소설 속 인물들에 의해 이야기가 진행되었다고.(소설을 쓴 것은 본인이지만 이야기를 이끌어간 것은 소설 속의 인물들에 의한 즉흥적인 부분이 많았다는 내용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각 인물들에 의해 변해가는 다자키 쓰쿠루의 모습이 본인에게도 매우 신선했다는 것이었다. 특히 사라에 의해 핀란드까지 떠나는 쓰쿠루의 여정은 본인도 생각지 못했던 장면이라고.
본인을 색채가 없고 밋밋한 사람이라 생각하며 스스로에게 자신감이 없는 쓰쿠루의 모습에서 누구나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을 법하다. 외부에서 비치는 모습(혹은 외부 사람들이 보는 자신의 모습)과 자기가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에는 항상 어느정도 간극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나는 왜이렇게 평범할까 하고 자책하는 사람이라도 외부인들이 보기에는 충분히 개성 넘친다고 생각하듯이.
색채가 없는 사람은 없다. 다만 그 색채를 다른 사람이 쉽게 알아보느냐, 조금 더 들여다 보아야 알수 있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가 자기의 색채를 찾기 위해 떠나는 순례의 여정을 그린 소설.
마침내 어렴풋이 그의 색채를 찾아내고, 색채를 찾는데 도움을 준 연인에게 고백을 앞두고 소설은 끝난다.
쓰쿠루는 사라와 함께 할 수 있었을까.
마지막 명쾌한 결말을 기대했지만, 역시나 결말은 독자의 몫으로 넘겨버리는 하루키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