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니얼 카너먼의 통찰력.

경험하는 자아와 기억하는 자아는 다르다.
순간순간의 경험은 그 당시를 좋게 만들지만, 기억하는 자아는 전체 경험에 대한 인상을 결정한다.

내가 여행지에서 그토록 중요시 여기는 ‘한방’이라는 것도 기억하는 자아를 위한 멋진 순간일 것이다. 여행 중의 경험은 매순간이 늘 즐겁고(때로는 힘들기도) 새로운 순간들이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기억에 남을만한 좋은 인상을 가지는 순간(이것을 나는 한방 이라 부른다)이 없다면 해당 여행은 그저그랬던 여행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무난한 일정의 여행과 일정 내내 힘들었지만 결정적 한방이 있던 여행을 추후 돌이켜 생각해보면 늘 우선순위는 결정적 한방이 있던 여행을 꼽게 된다. 여행 기간의 느꼈던 즐거움의 총합(계량적으로 계산하기는 힘들지만)은 무난한 일정의 여행이 확실하게 앞설 것이다. 이것은 반론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나중에 다시 생각해볼 때 다시 가고 싶은 여행을 꼽으라면 결정적 한방을 먼저 생각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여태껏 명확한 이유를 모른 채 어렴풋하게, 단순하게만 생각했던 것들의 이유가 뚜렷해지는 느낌이다.
위에서 언급했던 여행의 경험에 대한 것은 사람의 인식안에서 경험하는 자아와 기억하는 자아가 다르기 때문이다.
인증샷은 경험하는 자아에게는 여행을 즐기는 최선의 방법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것은 기억하는 자아에게는 유익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 경험과 기억은 혼동될 수 있다. 경험하는 자아는 발언권이 없다. 기억하는 자아는 더러는 엉터리이지만, 경험에 대한 점수를 부여하고 평가를 내리게 되는 자아이다.

'일상일기 > 짧은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초코송이 이야기  (0) 2019.11.04
자만심이 고개를 들 때  (0) 2019.07.31
일년, 삼백예순다섯날에 대한 생각  (0) 2018.01.07

 피곤에 지친 퇴근 길 저녁, 하루 종일 모니터와 자그마한 네모 칸에 눈이 시달려, 눈을 뜨고 앞을 쳐다보기도 싫은 퇴근 길. 3호선 대저 지하철 역사 내 편의점에 들러 초코송이를 산다. 늘 그 시간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소녀가 카운터를 지키고 있다. 진열대에 놓인 초코송이를 집어 들고 주변 과자들도 스윽 둘러본다. 크게 먹고픈 것이 보이지 않는다. 어느 때에는 간간히 초코바나 다른 스낵류를 함께 집어들기도 하지만 오늘은 초코송이만 선택을 받는다.

 

  삐빅- 바코드 스캔소리와 함께 띵동- 카드 결제 승인 문자가 온다. 이마트24 결제금액 1000, BC카드.

 

  지하철 플랫폼에 서서 종이상자를 뜯어낸다. 과자를 보호하기 위한 상자일까. 과자와 공기가 가득 찬(공기 대신 과자가 더 가득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은색 과자봉지를 소중한 듯 담고 있는 상자를 뜯어낸다. 절취 선이 곧게 뻗어있지만 그대로 뜯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지하철이 오기 전에 상자를 얼른 근처 쓰레기통에 버린다. 내가 먹고 싶은 것은 상자가 아니라 초코송이 이므로.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상자는 애초에 장식품에 지나지 않는 것.

  은색 과자 봉지를 뜯는다. 위쪽 가운데 부분을 잡고 양옆으로 힘을 준다. 뜯기를 한번에 성공하는 경우도 있고, 가끔은 그렇게 뜯을 수가 없어 가로방향으로 쭈욱 찢기도 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어쨌거나 중요한 것은 상자도, 비닐봉지도 아니니까. 중요한 것은 초코가 얹어진 자그마한 과자일 뿐이다.

  과자 하나를 집어 들고 입안으로 넣는다. 달콤한 초코의 향이 입안에 퍼진다. 반원모양의 둥그런 초코를 깨문다. 초코와 함께 아래쪽 과자도 같이 입안에서 부서진다. 이 순간이 행복하다. 나는 배가 고프기도 했고, 지치기도 했고, ..어쨌거나 초코송이가 먹고 싶었으니까. 그리고 은색 비닐 봉지 안에는 아직도 많은(하지만 조금 아쉬울 정도로) 초코송이들이 들어있으니까. 하찮은, 초코송이의 초코 크기만큼의 자그마한 행복을 느낀다. 이 작은 행복감도 여전히 소중하다. 나는 지금 퇴근하는 길이고, 하루의 업무는 모두 끝이 났고, 이제 남은 일이라고는 집에 도착하여 간단히 씻고 밥을 먹고, 온전히 저녁시간과 밤을 즐기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소중한 저녁 시간의 시작을 초코송이가 알려주기 때문인지, 아니면 초코송이를 먹었기 때문에 저녁이 시작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순간 입안에 남아있는(그리고 봉지 안에 여전히 남아있는) 초코송이의 맛은 하루 일상의 먼지들을 털어낸다.

 

  이윽고 비어버린 은색 봉지를 곧게 접어 딱지모양으로 접어 호주머니에 넣는다. 이 딱지는 사직역 1번 출구 앞 쓰레기통에 버려질 것이다. 그리고 한나절 기억의 껍데기들도 같이 버려질 것이다. 남은 것은 이제 나의 저녁 시간 뿐.

자만심이 고개를 들 때,
그 뒤통수를 후려쳐서라도 다시 고개를 숙이게 하라.
나 또한 잘난 것도, 대단할 것도 없는 한낱 인간일 뿐이니.

'일상일기 > 짧은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험하는 자아 / 기억하는 자아  (0) 2020.03.27
초코송이 이야기  (0) 2019.11.04
일년, 삼백예순다섯날에 대한 생각  (0) 2018.01.07

1년이라 불리우는 시간, 365.

 

365.

일년이라는 시간을 삼백육십오일이라고 말할 때..하루하루의 시간이 365라는 숫자로 단순화 되어버리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삼백예순다섯날, 삼백예순다섯날. ......

조용히 삼백예순다섯날이라고 일년이라는 시간을 읊조려 본다. 한날, 한날, 해가 뜨고 다시 해가 지고 달이 뜨고 지는 하루의 시간이 온전히 담기는 듯하다.

 그렇게 지나는 하루의 시간, 삼백예순다섯날이 모여 일년이라는 시간을 만들어낸다. 현재는 과거의 축적된 산물이라 할 때..지난 과거 속 하나하나의 사건들이 오롯이 담기는 듯하다.

 

 삼백예순다섯날. 간편하게 단순화시켜버린 365라는 숫자보다는..흘러버린 시간들에 대한 아쉬움이 위로가 된다.

'일상일기 > 짧은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험하는 자아 / 기억하는 자아  (0) 2020.03.27
초코송이 이야기  (0) 2019.11.04
자만심이 고개를 들 때  (0) 2019.07.31

+ Recent posts